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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Newtmas

#예수_생일축하해 #물_위만_걷자




BGM : Charlie Puth - Mistletoe




1


폭설로 계속 출발이 지연되던 비행기가 끝내 결항이었다.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겨우겨우 구한 표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못 갈 것 같아요. 뉴트는 벽에 기대 코트 안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어깨와 턱으로 겨우겨우 붙잡은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에 대충 대답했다. 네, 어쩔 수 없죠. 아뇨. 네, 리지한테 안부 전해 주세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더듬더듬 라이터를 찾았다. 네, 네. 아빠, 저 어린애 아니에요…… 저도요. 입에 담배를 문 탓에 발음이 뭉크러졌다. 눈을 감는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즐거운 웃음소리에 크리스마스답게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2


라이터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결국 불을 붙이지 못한 담배는 담배갑으로 돌아갔다. 뉴트의 날숨을 따라 담배 연기 대신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비행기는 뜨지 않고 뉴트는 갈 곳이 없었다. 운도 지지리도 안 좋고 이미 사방은 하얀데 눈은 계속 오고 이대로 차를 운전해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 상가에서 틀어 놓은 캐롤이 흘러들어오지 않도록 창을 꼭 닫고 하루종일 노트북을 앞에 둔 채 넷플릭스나 뒤져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어딘가에서 사느랗게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뉴트는 차키를 꺼내던 손을 멈췄다. 동물 털 알러지가 있는 동생 탓에 동물은 한 번도 가까이 해본 적 없는 뉴트도 고양이 울음소리 정도는 알아챌 수 있었다. 벽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 가장 가까이 있는 자동차로 다가가 고개를 숙인다. 눈이 오기 전부터 차가 서있었는지 그 아래엔 눈이 쌓여 있지 않았다. 보도블록과 뺨이 키스를 할 만큼 몸을 숙이자 잘 보이진 않지만 아마 주황색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리 이맘때 고양이가 추위를 피하려고 자동차 아래에 들어가 있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고양이의 목에 빨간 목걸이가 없었더라면 뉴트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그냥 다시 허리를 펴고 제 차에 올랐을 거였다. 하지만 그때 고양이의 목걸이가 뉴트의 눈에 들어왔다. 뉴트는 라이터를 잃어버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손을 뻗었다. 당연스럽게도 고양이는 뉴트의 손을 피해 뒤를 돌아 종종걸음쳤지만 눈을 밟고는 다시 차 아래로 허겁지겁 들어갔다. 그 모습에 뉴트는 자신의 좆망한 상황과 관계없이 슬며시 웃음이 났다. 고양이는 여전히 눈과 뉴트의 뻗은 손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뉴트를 등진 채였다. 뉴트는 동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스스로의 머리로 고양이를 회유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결국 바로 일어나 자신의 핸드폰을 켰다. 추위에 곱은 손으로 인터넷을 켜 검색창에 더듬더듬 알파벳을 늘어놓는다.


뉴트는 대충 공항 안 편의점에서 참치캔을 샀다. 이거 고양이가 먹어도 되나요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뉴트는 고양이가 혹시 그새 눈에 젖는 것을 감안하고 도망쳤을까 아주 조금 걱정하며 주차장으로 돌아갔으나 차 아래를 들여다 보자 고양이는 아직 거기에 있었다. 캔을 까서 차 앞에 두자 고양이는 언제 낯을 가렸냐는 듯 순순히 차 아래서 나왔다. 캔에 주둥이를 붙인 고양이는 집고양이답게 뉴트가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양이의 등에 형체가 분명한 눈송이가 하나 둘 내려앉았다. 그 앞에 쭈그려 앉은 뉴트는 눈높이를 고양이와 맞추어 예의 그 목걸이를 손으로 슬쩍 들춰 보았다. 이름도 없이 아마 주인의 것인 듯한 번호만 달랑 음각으로 쓰여 있었다.



3


주인은 공항 주변에 있었는지, 뉴트가 연락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뉴트는 당황스러운 눈길로 그를 훑어 보았다. 듬직해 보이는 퍽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는 연락을 받기 전부터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눈이라도 맞았는지 어깨가 축축해 보였고, 까만 머리가 조금 젖어 보였고, 무엇보다,


어허흐허흐허어어흐엉 뉴트 허어어헝 없어진 줄 알고 허어어어흐흐윽읍


고양이를 발견하자마자 뉴트의 이름을 부르며 큰 소리로 엉엉 울고 있었다.



4


그러니까 고양이 이름이 뉴트라고요?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도 인연이네요, 제 이름도 뉴트거든요.

영영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요, 하필 집 주변도 아니라서,

……아 크리스마스라 고향에 가려고 하셨나 봐요.

네에, 근데 비행기가 결항돼서,

잠깐만, 근데 너 토마스 아니야?

훌쩍, 네?

위키드 하이 나왔지? 나랑 영어 수업 같이 들었잖아.

……

맞는데. 진짜로 나 몰라?

……혹시 이 번호로 연락해도 될까요?

어?

그, 너무 잘생기셔서, 훌쩍.



0


토마스가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다. 어찌나 말랐는지 뼈마디가 드러난 뒷목도, 그 목덜미를 살짝 덮은 따뜻한 햇살 같은 색의 머리카락도, 수업에 집중하느라 조금 힘이 들어간 어깨도, 무심코 뒤를 돌아보는 깊은 밤색 눈과 마주친 순간도. 잊어버릴 수 없을 정도로 발끝까지 저릿하던 느낌. 항상 학생을 성씨로 부르는 영어 선생님 탓에 알 길이 없던 그 애의 이름을 우연히 알게 된 날 얼마나 설렜는지,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을 때 왜 다른 이름이 아닌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그 애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지 같은 거. 절대 잊지 못할 것들.



5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닐 모양이다. 하늘을 메운 구름은 퍽 깨끗한 색이다. 그래도 비행기가 뜨지 못할 정도로 눈이 푹푹 내리던 작년보다야 올해가 낫다는 생각이 들자 뉴트는 벌써 이만큼이나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난 일 년간 그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작년에는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가족도 친구도 선물도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생겼다고 암담해했었지……만 올해는 자의로 고향집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뉴트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본다. 기숙사에서 거처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얼마 없는 물건 중 하나다. 시계 바늘은 벌써 12시를 훌쩍 넘긴 시각을 가리킨다. 분명 점심 먹을 때쯤 온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늦지. 연락할까 고민하며 만지작거리던 핸드폰을 막 열어 연락을 하려던 순간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뉴트는 서둘러 일어나다 조금 휘청한다.


문을 열자 거기에 토마스가 서있다. 토마스의 품에는 커다란 전나무가 안겨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뉴트.


토마스가 웃는다. 뉴트의 눈에는 빨갛게 언 토마스의 양 뺨이 들어온다. 크리스마스인데 집이 휑하길래…… 너무 짐 되려나? 뉴트는 빨갛게 언 뺨에 대한 마음을 생각한다.그럴 리가. 천천히 대답한다. 크리스마스다. 뉴트가 웃는다. 메리 크리스마스, 토미. 작년 이맘때 뉴트는 순전히 다 아는 게 분명한 동창생이 왜 자신을 모르는 체 하는지에 대한 호기심과 망친 기분에 대한 전환으로 토마스의 연락을 수락했다. 그러니까, 그 해의 폭설이 결과적으로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리라는 걸 그때의 뉴트는 채 알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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