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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 기독학교 톰늍




그날 나는 죽기로 결심하고 학교 본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3학년으로 어렸고 어느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야 뒈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 학교가 진짜 높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옥상에서 떨어져서 성공적으로 죽으려고 했다. 다른 애들은 다 수업 들어갔을 시간이었다. 수업을 빼먹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하긴 이제 죽을 건데 수업 좀 빼먹는 게 뭐가 어떻다고. 이제 사라질 건데.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쯤이었나. 땅이 부족했는지 공사가 잘못 됐는지 애초에 지을 때부터 지나치게 가까운 별관 4층 창문을 통해 웬 어린애와 눈이 마주쳤다. 1학년쯤 됐으려나. 내가 당황한 만큼 아이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애는 빛 때문인지 반짝이는 밝은 눈동자를 고정하지 못하고 당황한 듯 자주 눈을 깜빡였다. 나는 잠시 눈을 떼지 않고 그 눈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예쁜 눈이었다. 순간 나는 어쩐지 그 존나 예쁜 눈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만 터무니없는 허상이었다. 그애가 퍼뜩 몸을 돌려 눈 깜짝할 새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아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 계단을 끝까지 올랐다. 그리고 미련 없이 몸을 던졌다.

떨어지기 직전 마주친 예의 캬라멜 색 눈이 감은 눈 앞에 자꾸 아른거렸다.


그 애가 혹시 내가 뭘 하려는지 알았을까

그 애 혹시 선생님 사무실로 뛰어간 건가

설마 내가 떨어지는 걸 보진 못하겠지

그 애 아직 어려 보이던데

그 애……

날 구해줄까,


나는 6층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던 중 교목이랍시고 심어 놓은 주목나무에 한 번 걸리고 땅에 부딫혔다. 그 사건으로 나는 가벼운 뇌진탕을 앓았고 발목이 평생토록 아작났다.




*




등허리를 지분거리던 토미의 손은 이제 내 엉덩이 즈음에 와 있었다. 그애의 손은 항상 따뜻했고, 이럴 때면 데일 만큼 뜨거웠다. 토미가 내 속옷 밴드를 더듬거렸다. 나는 왼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4인실 기숙사는 비좁았다. 한쪽 끝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다른쪽 끝에서 들렸다. 토미의 손이 내 속옷 속으로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침을 삼켰다. 잠귀 밝은 민호가 깰 것 같았다. 흘끗 곁눈질을 하는데 입을 막은 손에 은근한 감각이 느껴졌다. 내가 노려보자 토마스는 내 손가락을 깨무는 걸 그만두고 눈짓했다. 손 치워, 뉴트. 그애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입에서 손을 떼고 침대를 짚었다. 토미가 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팠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침대보만 움켜쥐었다. 뭐든 일단 물고 보는 게 개 같았다. 혀를 섞는 소리가 질척거렸다. 들킬까 다만 눈을 감았다.

토미와 이렇게 모두가 잠든 기숙사 침대에서 몸을 섞은 것은 7학년이 되고 얼마 안 되어서부터였다. 토미가 4학년에서 5학년과 6학년을 거치지도 않고 7학년으로 왔을 때 우리는 단번에 눈이 맞았다. 일주일쯤 뒤 우리는 입을 맞췄고, 한 달 정도 지나고선 배를 맞대었다. 토미는…… 좋았다. 그냥, 그냥 좋았다. 열일곱 살에게는 두 살이라는 나이차이가 엄청나게 크게 느껴졌고, 기숙사 침대는 좁고 삐걱거리고 허리가 아팠지만 그런 것들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끝내주게 좋았다.

나는 토미의 어깨를 밀쳐냈다. 뉴트, 왜…… 놀라 속삭이는 입을 틀어막고 이불과 침대의 틈으로 밖을 살폈다. 가까워지던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이내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불을 켰다. 밝아진 통에 예민한 민호가 먼저 눈을 떴고, 우리는 여전히 2층 침대에 못박힌 듯 서로 엉킨 그대로 사감선생님이 우리의 몸에 덮힌 하얀 이불을 걷을 때까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파자마 셔츠에 두 팔만 겨우 꿴 채였고, 아래엔 속옷 밖에 입지 않은 채였다. 한마디로 개 좆 같았다.


토미는 지금 어디 있을까. 아마 교장실에 있겠지. 교장실에서 사감선생님은 그애를 막 질책하고 교장선생님은 그애의 부모님께 편지를 부칠 준비를 하고 토마스는 아마 언제나와 같이 아무 계획도 없이 살짝 굳은 채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퇴학당할 가능성과 징계를 받을 가능성을 재고 있겠지.

다행인 것 중 하나는 토미는 퇴학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렵다. 내가 퇴학당할까 두렵고, 징계를 받을까 두렵고, 다시는 나와 토미가 서로 만나지 못할까 봐 두렵다. 그럴 때 보통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척 한다. 다행인 것 중 둘째는 학교는 우릴 떨어뜨릴망정 퇴학시키진 않을 거란 거다. 토마스는 2년의 나이를 뛰어넘고 학년 수석이고 나는 언제나 그 애와 성적으로 등수를 다투고 있으니까. 이 학교는 공부 잘하는 애들을 웬만하면 눈 감고 넘어간다. 우리는 아쉽지 않은 척 할 수 있다. 토미는 실제로 아쉽지 않을 거다. 그앤 자주 이렇게 말했다.


자퇴하고 싶어.


그러면 그 애가 무릎을 베고 누운 탓에 그 애로부터 떨어지지도 못하는 나는 그대로 미간을 좁히곤 했다.


또 그 소리지, 토미.

망할 학교. 지긋지긋해서 못 참겠어.

일 년만 참으면 돼.

뉴트.

네가 이 학교에서 가장 혜택 받고 있단 거 알잖아.


그럴 때면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


뉴트.


토미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갑자기 무릎이 가벼워진다. 그애가 내 손을 덥썩 붙잡았다.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 같이 도망가자.


나는 쉽게 웃음을 터뜨리지 못했다.


뭐래.


나는 결국 그렇게 말하며 흐리게 미소했다. 의미 없는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는 토미의 얼굴은 그런 상상을 할 때면 해를 머금은 구름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이 학교에서 벗어나서 우리 둘이 살자, 뉴트. 나는 똑똑하니까 너 하나는 먹여 살릴 수 있어. 어때? 나는, 음. 토미. 내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자 토마스는 정말이지 어린애처럼 엉덩이를 들썩이며 나를 재촉했다. 뭐가 문제야, 뉴트? 날 사랑하잖아. 우리 사이에 다른 장애물이 있어? 죄책감 때문에 그래? 그럼 내가 널 납치한 걸로 하자. 한 달에 한 번 너랑 통화하게 해주는 조건으로 너희 가족에게 오십 달러만 요구할게.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자주 깜빡였다. 내가 받아주지 않는 진지함이 멋쩍어진 토마스는 뜬구름 같은 소릴 지껄였다. 토미는 자주 뜬 구름 같았다. 현실에 발 붙이지 못하는 이야기를 주로 했고 그걸 희망적으로 믿었다.

그런 부분에서 나와 그는 반대였다.


기숙사 문이 열린다. 사감 선생님이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부른다. 뉴턴. 토미가 어떤 태도를 취해서 그의 신경을 돋구었을지 짐작이 간다. 웃음이 비집고 나오는 걸 참고 그를 따라 교장실로 향한다. 복도에서 시시덕거리던 애들이 사감 선생님 눈치를 본다. 민호가 내 어깨를 가볍게 짚는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교칙이 동성 교제를 금지하던가? 아, 이 학교는 남자밖에 없는데도 이성 교제만 금지하지! 동성 교제를 교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근데 뉴트는 왜 끌려가는 거야! 민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사감은 그 애를 노려보다 나를 끌고 가느라 달리 제재를 가하지는 못한다. 생각해 보면 이 새끼는 진작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알면서 눈 감아 준 거다. 존나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나. 쓸데없는 생각도 든다. 경첩이 뻑뻑한 소리를 내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간 교장실엔 교장선생님과 부모님이 계신다. 토미가 어딨을지 더 궁금해진다.


"뉴트!"


엄마가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 이름을 부른다. 미간이 저절로 좁혀지는 걸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여 바닥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짙은 갈색 구두를 신고 계셨다. 구두는 교장실 카페트에 비해 유난히 지저분해 보인다. 나는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죄송합,

"사과는 잘못했을 때 하는 거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 엄마는 다가와서 내 손을 잡는다. 이때 조금 고개를 드는 희망.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네가 아니라 그 애가 그랬겠지. 이름이 뭐라고? 토마스? 그 영악한 애가 협박이라도 했니? 그 애한테 말려든 거지? 네가 그럴 애가 아닌데, 네가 얼마나 착한 앤데 아아아아 존나 어쩌라고 안 물어봤는데요 그러게 뉴트, 네가 말해 봐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존나 조용히 어쩔 수 없었던 거지? 하던대로 공부나 할걸 웬 얘가 그럴 애가 아니에요 연애야 연애는 미쳤지 분수에 안 맞게 그냥 네라고 대답해 버릴까 네 맞아요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하고 빠져나갈까 그래도 되지 않을까 토미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 그때, 내 팔목을 강하게 붙잡는 손아귀의 힘,


뉴트!


토마스의 목소리,

나는 눈을 뜬다. 토미가 나를 끌어당긴다. 뛰어! 그애가 나를 붙잡고 뛰기 시작한다. 내 다리가 저절로 움직인다. 엄마가 내 팔을 붙잡고 나는 그걸 뿌리치고 계속 달린다. 이것 봐, 결국 우리 둘이 도망가게 되잖아! 숨이 찬 기색 없이 토미가 소리치고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숨을 헐떡이느라, 또 불편한 다리를 무시하고 달리느라 토마스와 속도를 맞추는 건 내게 너무 버거운 일 같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하릴없이 토마스를 믿고 따라 달릴 거란 거. 네, 맞아요, 이 영악한 애가 저를 말려들게 했어요, 꼭 지금처럼 대책 없이, 그리고 저는 이런 이 애를 사랑해요. 토미가 나를 돌아보곤 주춤하며 달리던 속도를 줄인다. 언젠가처럼, 나는 그 반짝이는 두 눈이 나를 구원해 줄 것만 같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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