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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에 대한 보고서

눈치 없는 신참의 톰늍 관찰기




※ 토마스가 글레이드에 올라간 뒤에도 글레이드가 전과 같이 운영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Day 1


"얘 안 일어나는데? 죽은 거 아냐?"

"겁 먹어서 못 일어나는 거야. 뻔하잖아."

"요즘 신참은 순 쫄보 뿐이네"

"찬물이라도 좀 부어 볼까?"


놔둬. 호쾌한 목소리에 이어 내 뺨을 가볍게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신참, 꾀 부리지 말고 일어나. 반복되는 목소리에 나는 슬그머니 실눈을 떴다. 퍽 단호해 보이는 희멀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주위를 빙 둘러싼 웬 남자애들 무리. 혼란스러움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손을 뻗어 땅을 짚었다. 싸늘했다. 남들보다 일 미터 가량 꺼진 철 바닥을 가진 구덩이에 있는 내가 허리를 세우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믿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재기도 전에 나는 이미 그 손을 지푸라기라도 되는 것처럼 절실하게 붙잡고 있었다. 그 손은 퍽 손쉽게 나를 지상으로 올렸다. 나뭇가지 같은 팔에서 그런 힘은 어떻게 나오는지. 멍한 채로 주변을 빙 둘러 보았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십수 쌍의 눈. 입을 열었다. 오랜 시간 침묵한 것처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두어 번 헛기침을 해 침묵의 흔적을 몰아냈다.


"여기가 어디야?"


한바탕 웃음이 지나갔다. 짓궂은, 또 조금 긴장된 웃음. 나를 깨운 남자애가 여전히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글레이드에 온 걸 환영한다."




Day 2


"여긴 도살팀이고, 여긴 요리팀."


말이 요리지 꿀꿀이죽이나 다름없어. 낮은 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뉴트가 장난스레 씩 웃었다. 뉴트는 글레이드의 부대장으로, 내 손을 잡아 일으킨 바로 그 남자애였다. 금발에 손목이 퍽 가느다란. 나도 따라 어색하게 웃었지만 뉴트 생각에도 그게 웃는 것처럼 보였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작물을 기르고 재배하지. 너도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괜찮지? 뉴트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직 한 팀 남지 않았어? 설명을 못 들은 것 같은데."

"네가 맞아."


남은 하나는 바로 러너팀인데ㅡ 뉴트가 뒤를 돌아 거대한 장벽과 그 너머로의 유일한 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올 시간이 됐는데. 그애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지금 보러 가자."


뉴트가 내 팔을 툭 쳤다. 그러곤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그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나도 허둥지둥 그의 뒤를 좇았다. 열린 문으로 속속 도착하는 러너애들이 보였다. 뉴트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봐, 저기 머리 세운 애는 러너팀 팀장 민호고, 그 옆에 쟤는 토마스. 뉴트는 검은 머리를 세운(방법이 궁금하다) 남자애와 짙은 갈색 머리에 얼굴에 점이 많은 남자애를 차례로 가리키더니, 그중 짙은 갈색 머리의 남자애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토미."


토미? 나는 예의도 없이 순간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열여덟 살은 먹어 보이는 건장한 남자애한테 토미라니. 엄청나게 친해서가 아니라면 놀리거나 비꼬려는 의미가 분명했다. 하지만 터져나올 뻔한 웃음을 겨우 삼키고 확인한 아이들의 표정은 태연했다. 오 마이 갓. 설마 진심으로 그런 호칭을 부른 건 아니겠지.

뉴트. 토미라고 불린 남자애가 웃으며 뉴트를 껴안았다. ……이것도 믿을 수가 없는데. 그애가 어리광부리듯 뉴트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뉴트의 뺨에 그애의 짙은 갈색 머리카락이 닿는 게 보였다. 어리둥절해져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다른 글레이더들은 항상 있는 일인 것처럼 굴었다. 나는 정말이지 그 둘의 유대에 놀라고 있었는데.

나는 몸을 옆으로 살짝 기울여 다른 러너와 이야기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물었다.


"쟤네 둘 진짜 친한가 봐."


내 말을 들은 애는 뭔가 잘못 듣기라도 한 것처럼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쟤네 둘?


"……토마스랑 뉴트?"


당연하지. 조금의 간격을 두고 그애가 묘하게 웃었다. 친하고 말고. 우리 중 제일 친하지.




Day 3


저녁 때에도 토마스와 뉴트는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프라이팬에게서 음식을 받아 빈자리에 앉아 그들을 관찰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행복하게 웃다가, 뉴트가 내 쪽을 고갯짓했다. 이번 신참……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다가 다른 소음에 가려 사라졌다. 줄곧 바라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친 토마스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도 손을 흔들자 토마스는 뉴트에게 뭔가 얘기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안녕, 난 토마스라고 해."

"아, 뉴트한테서 얘기 들었어."


그랬어? 토마스가 옅게 미소했다. 좋은 애 같아 보였다.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트와 비슷하지만 다르게 긴장을 풀어 주는 애였다.


"글레이드 생활은 어때?"


토마스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아직은 좀, 혼란스러워서."

"그럴만 하지."

"아직 이름도 기억 안 나고 말이야."

"너무 순탄해서 그런 거 아냐? 그러니까 난, 좀 쪽팔리긴 한데, 갤리랑 한 판 싸우다가 땅에 헤딩한 뒤에야 이름을 기억해냈거든."


토마스는 건너편에 보이는 덩치 크고 어딘가 억울해 보이는 남자애를 가리키더니 멋쩍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좀 웃긴다,"


대꾸하고 나니 답잖게 놀려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곧바로 장난스러운 호칭을 덧붙였다.


"토미."


내 말이 던져지자마자 왁자지껄 떠들던 소리가 뚝 끊겼다. 정적이 흘렀다. 나는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았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토마스를 돌아보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애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내 눈을 피해…… 뉴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리둥절해져서 반대쪽을 돌아보자 그애 역시 마주친 눈을 피해 뉴트를 바라보았다. 모든 애들이 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뉴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나에게로 향하는 눈빛에는 미처 삼키지 못한 불쾌감이 드러나 있었다.

다행히 갤리주를 마시던 민호가 잘못 삼켜서인지 입에 가득 머금고 있던 것을 대차게 뿜는 바람에 그 묘하고 불편한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저녁 시간 내내 나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사람 한 명은 매장할 수 있을 것 같은 뉴트의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Day 4


바뀐 환경에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한참을 뒤척이다 잠에 들었는데, 오밤중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옆 해먹은 뉴트가 사용했다. 나는 잠결에 앓는 소리를 했다.


"뉴트?"


중얼거리다 겨우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반대쪽으로 돌아 눕자 조심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형체가 보였다. 나는 해먹에서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 해먹은 비어 있었다. 뉴트? 다시 한 번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해먹에서 내려왔다. 갑자기 괜한 걱정이 몰려왔다. 없던 호기심도 동했다. 그앨 본 지는 며칠 안 됐지만 이상하게도 뉴트는 이유 없이 돌연 사라질 애 같진 않았다.


*


뉴트를 찾으러 돌아다니다 숲까지 다다랐다. 밤이라 어두운데다가 온통 나무가 우거져서 먼 곳까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뭇가지를 헤치며 한발짝 나아갔다. 발밑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뉴트? 밤중에 숲에 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음침한 분위기 탓인지 저절로 목소리를 낮추게 되었다. 어디에도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 이름을 뒤로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뉴ㅡ"


트. 미처 내뱉지 못한 음절을 꿀꺽 삼켰다. 거기에 뉴트가 있었다.

검은 잎들 사이에.

더운 숨을 내쉬면서.

그애의 목덜미를 거의 물어뜯다시피 하는 토마스와 함께.


"잠깐만, 윽, 똘추야. 천천히 좀,"

"이름 불러줘."

"ㅡ토미."

"그래. 뉴트, 나 여기 있어."

"토미, 젠장."

"혹시 질투났어? 아까,"

"내가? 토미, …아니라곤 못 하겠다."

"앞으로는 누가 그러면 하지 말라고 할게."

"그럴 필요는,"

"아니야, 그럴래."


토마스의 손이 뉴트의 마른 허리로 향했다.


"나도 너 말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부르는 거 싫어."


토마스가 뉴트의 옷을 끌어올렸다. 어둠속에서도 뉴트의 맨 허리를 매만지는 토마스의 손길이 점점 빨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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