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어떤 사랑

톰늍 테이크 컬러버스






※ 테이크 컬러버스 잘 모름 주의

※ 얘가 내가 아는 걔 맞나 주의

※ 최애 죽음 주의









뉴트는 내게 죽여 달라고 했다.

아니, 뉴트는 내게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손 잡아 달라고, 안아 달라고, 전에 없이 아이처럼, 정말이지 어울리지도 않게, 입 맞추어 달라고, 눈에, 코에, 이마에, 뺨에, 입에, 내 손으로 어루만져 달라고, 물어뜯어 달라고, 섞이고 싶다고, 그냥 온몸 구석구석 남김없이 흔적을 남겨 달라고, 아주 망가뜨려 달라고, 거칠게,

사랑해 달라고 했다.



*



뉴트는 언제부터 그 병을 앓았을까.

언제부터 뉴트의 안에 녀석이 자리잡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언제부터 숨어 있다가 불온한 손을 뻗어 뉴트의 머리카락이고 마음이고 잠식해 아주 다른 사람처럼 바꾸어 버린 건지. 그 병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잠복 기간이 오래이다가 청소년기에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뉴트는 언제부터 마음을 숨기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뉴트는 병 때문에 마음을 앓게 된 것일까, 마음 때문에 병을 앓게 된 것일까.

어느 편이든 뉴트는 숨기는 데에 아주 능숙했다. 마음도, 병도.



*



뉴트는 금발이었다. 뉴트는 머리를 짧게 자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성격에 비해 머리는 곧잘 지저분하게 자랐다. 한올한올이 얇고 결이 좋지 않았다. 완전 개털이야, 개털. 멍멍 해 봐. 웃으며 말하면 뉴트는 노려보다가도 멍멍. 하고 받아쳤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추면 나는 곧잘 눈을 깜빡거리게 되었다. 햇빛 부서지는 강 물결 같았다. 반짝였다.



*



뉴트와 나는 친한 친구였, 다. 그러니까, 하루종일 함께 생활하며 마주앉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혼나고 어깨동무를 하고 머리를 만져 주고 몸을 부비고 장난으로 귀를 깨물어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친한, 친구. 우리는 다른 친구도 많았지만 곧잘 우리 둘이서만 놀았다. 그래도 됐다. 토마스와 뉴트는 그래도 되는 애들이었다. 처음엔 의아해하던 친구들도 금세 그러려니 했다. 우리 사이엔 남의 질투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다른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우린 자주 우리 집 뒷마당에 있는 사과나무 아래 앉아 어깨를 맞대고 앉아있었고 너무 뛰어서 달뜬 숨이 많이 섞인 목소리로 서로의 귀에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비밀을 속삭이곤 했다. 아무것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작은 틈만을 남겨 두고서. 우린 그게 전부였다. 그건 우리의 전부였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그 틈에서는 무언가가 자라났다. 아무렇지 않다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



언제부턴가 뉴트가 나를 피하다못해 근처에도 오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뉴트는 내 생각보다 훨씬 치밀한 사람이었다. 같은 학교에, 같이 듣는 수업만 세 과목, 같은 동네에 사는 우리는 어느 순간부턴가 미칠 듯 만나기 힘들었다. 뉴트는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에야 교실에 발을 들였고 종이 치자마자 나가서 내가 허둥지둥 가방에 물건을 챙기고 뒤따라 뛰쳐나갔을 땐 이미 보이지 않았다. 겨우 마주해 말이라도 붙일라치면 뉴트는 대놓고 나를 무시하며 다른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윈스턴, 너 볼펜 망가졌다고 하지 않았어? 혹시 필요하면 빌려줄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화가 날 수는 없었다. 뉴트가 아무 이유 없이 나를 피할 리는 없었다. 다만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뉴트가 이렇게 말도 없이 갈등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혹시 뉴트가 주는 언질을 내가 답답하게 알아먹지 못한 건 아닐까. 나는 하굣길에 나타나지 않는 뉴트를 기다리다 뉴트 대신 보이는 다른 친구들을 붙잡고 이렇게 물어보고 다니곤 했었다. "저기ㅡ소냐, 혹시 뉴트가 나한테 화난 게 있는지 물어봐 줄래?" "뭔진 모르겠는데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했나 봐. 그게 뭐든 내가 다 잘못했고 반성하고 있다고 전해줄래? 미안하고 그립다고도." 답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이유도 모르는 채 가장 친한 친구와 그렇게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된 나는 몇 달 후에야 먼발치서 보이는 뉴트의 머리뿌리가 벌써 한참 짙은 색으로 자라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언제였냐면, 그러니까, 그게 아마, 봄이었다.



*



그 병에 대해서 알려줄 때 뉴트는 자신이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잠복기가 정해져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증상이 나타나는 거래. 머리가 끝까지 그렇게 상대와 같은 색으로 자라나면 대부분 죽는대."

우리는 언제나처럼 우거진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애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문제에 대해 설명하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고, 뉴트의 어깨에 기대 있던 나 역시 큰 흥미 없이 대꾸했다. "별 안타까운 병이 다 있네. 호르몬 때문인가?"

"원인은 알 수 없는데,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아."


잠시 뜸을 들이다,


"짝사랑 상대가 환자 본인에게 연애감정을 느끼지 못하는데 스킨십을 하면 병 진행이 빨라진대. 반대로 연애감정을 느끼면 스킨십으로써 치료할 수 있는 거고."


왜 잊고 있었을까.


"그거 진짜 희한하다."


뉴트는 자신과 관련된 문제일수록 더 담담한 척을 했다.



*



뉴트가 그 병을 앓는다는 게 기정사실화된 후부터, 나는 내 옛 친구로부터 더욱 눈을 뗄 수 없게 되었다. 뉴트를 물들인 저 색은 누구의 영향일까. 트리사? 브렌다? 해리엇? 그만큼의 어두운 머리칼을 가진 애들의 이름을 내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다. 과연 누구의 머리색일까, 저건.


그런데 정말 뉴트는 왜 나를 모르는 척 할까.


목구멍에서는 그 이름들에 대한 묘한 질투심이 울컥 끓어올랐다.



*



뉴트는 내게 사랑해 달라고 했다.

문제는 내가 뉴트를 사랑한다는 데에 있었다.



*



"토미,"

"뉴트, 안 돼."

"토미, 제발."

"난 못 해."

"씨발, 토마스!"


흠칫, 놀란 눈이 커졌다. 내가 뉴트의 부탁을 거절한 일 역시 전에 없던 일이었지만, 뉴트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뉴트는 금세 후회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 표정은 나를 아프게 했다. 하지만, 하지만,


"……뉴트,"

"제발, 토미. 마지막 부탁인 거 너도 알잖아."


나는 허망한 시선으로 뉴트를 바라보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창백한 얼굴. 멀리서 봤을 때보다 더 야윈 뺨은 핥으면 짭조름한 맛이 느껴지겠지. 언제나처럼 고집스러운 미간과 턱, 입술. 아몬드 색 두 눈은 잔뜩 충혈된 채였다.

그리고 머리. 얇고 결이 좋지 않던, 빛이 비추면 눈부시게 되어 자주 눈을 깜빡이게 하던 금발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 머리를 내 이 손으로 쓸어넘기고 눈물이 얼룩진 뺨을 쓸어주고 싶었다. 어느 때보다 작고 가녀려 보이는 내 오랜 친구를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꽉 부둥켜 안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한다면 뉴트는,



*



문제는 내가 뉴트를 사랑한다는 데에 있었다.

나와 뉴트는 아주 오래 알아온 사이다. 뉴트가 나를 피하기 전까지 나는 그애와 떨어져 있는 순간을 기억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뉴트와 나는 함께 놀았고, 함께 공부를 했고, 함께 운동을 했고, 우리 부모님이 이혼하실 때 나는 뉴트로 말미암아 위로받았고, 숱한 입학식과 졸업식과 학교에서의 평범한 나날들은 언제나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고,

초등학생 때였나, 언젠가 그애의 집에서 단둘이 파자마 파티를 할 때, 우리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토미.

응?

너 크면 결혼할 거야?

음…… 뉴트 네가 하면.

그게 뭐야, 똘추야.

나 혼자 결혼하면 너 놀 친구 없잖아.

씨, 죽을래?

사실이면서. 너는 나 결혼 안 해도 결혼할 거야?

……

응? 나 두고 결혼할 거냐니까?

아니.


좋았어. 말하며 웃는 순간 이불 속에서 내 손을 붙잡는 뉴트의 손이 느껴졌다. 나보다 좀 더 서늘한 온도 그리고 좀 더 건조한 살결. 나는 뉴트의 손을 사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뉴트를 바라보았다. 어둠에 익은 눈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뉴트가 비쳤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을까. 그렇게 삼사 초 마주친 눈길을 돌려 다시 뉴트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뉴트의 눈을 사랑했다. 뉴트의 천장은 단정했다. 얼룩진 위에 야광별이 잔뜩 붙어있는 내 방 천장을 그 위에 그려봤다. 뉴트는 아직 나를 보고 있을까. 언제까지 보고 있을까.


뉴트.

왜?

나 비밀 얘기 하나 해도 돼?

그래.

나,

응.

그러니까,

응.

내가,

응.

좋아하는 여자애 생겼어.

……

누군지 안 물어봐?

……

너도 아는 애야. 나랑 같은 반이고, 우리랑 영어 수업 같이 듣는 진한 갈색 머리 여자애 있잖아.

……

뉴트?

응.

뭐야. 잠들었었어?

……응.

바보.

……

……

토미.

응?

어른 되면,

응.

나랑, 같이 살래?


나는 뉴트를 사랑한다. 뉴트의 손을 사랑한다. 뉴트의 눈을 사랑한다. 낮게 흘리듯 웃는 웃음을 사랑한다. 어릴 때의 흔적이라곤 온데간데 없는 거친 목소리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로 빚어내는 곧은 문장, 또는 욕설, 뉴트의 마른 손목, 흐린 날씨면 쿡쿡 쑤신다며 투정을 부리던 뉴트의 아픈 다리, 붙잡으면 뼈가 만져지는 어깨, 절대 나보다 짧게 자르지 않는 건조한 색채의 머리카락, 진중하게 좁히는 미간, 함께하는 시간, 함께했던 공간, 함께 나눈 생각, 숱한 추억들,

뉴트는 나의 친구였고 형이었고 동생이었고 선생이었고 아버지였고……


좋아!


하지만 단 한 번도 연인이었던 적은 없었다.

내가 뉴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까.



*



제발 토미 제발 제발 나를 죽여 줘 부탁이야 키스해 줘 네 손에 네 손길에 죽고 싶어 이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 네가 날 죽이는 것 입 맞춰 줘 그 손으로 내 목을 졸라 비틀어 내 숨통을 끊어 줘 내 몸에 이 씨팔 좆 같은 검은 피가 흐르지 않도록 씨발 좀 왜 착한 척 날 위하는 척이야 역겹게 개 같은 새끼야 어차피 너는 나를 죽이게 되어 있어 네가 나를 만지든 만지지 않든 나는 죽고 있다고 너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고 네가 나를 죽이는 거야 나는 곧 죽을 거라고 너 때문에 씨발 토미 너 때문에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한다면 뉴트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뉴트는,


내가 그렇게 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너는 죽잖아.


목이 메어 말은 오래된 사과처럼 푸석하게 뭉그러진다. 입술을 깨물었다. 진심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날 상처주기 위해 부러 하는 말이란 걸 알기 때문에 더욱, 뉴트의 말은 정말이지 상처로 남았다.



*



다음날 뉴트는 우리 집 뒷마당에서 발견되었다. 몸 안에 남은 모든 물질을 다 토해낸 채 보기 힘든 몰골로. 원래부터 몸에 든 게 없을만큼 가늘긴 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뉴트의 목에서 허리띠를 풀어내자 종이인형 같은 뉴트가 내 품으로 툭 떨어졌다. 정말이지 한손으로 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지만 이 무게감, 숨이 콱 막혀 돌아버리게 하는 무게감. ……근데 이걸 뉴트라고 해도 되는 건가. 나를 집어삼킬 만큼 서늘한 이 묵직한 몸뚱이를. 우리 부모님이 이 집으로 이사왔을 때 뉴트의 부모님이 선물했던 사과나무에 매달린 뉴트의 허리띠가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꼭 뉴트의 팔다리 같았다. 눈가에 열이 몰렸다.

뉴트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힘없는 검은, 머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턱끝에서 뚝 차마 추스르지 못한 뜨거운 열기가 떨어졌다. 뉴트의 광대를 엄지로 지긋이 눌러 보았다. 차가운 살갗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흔적을 머금고 있었다. 말을 듣지 않는 손. 두어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곤 눈을 감겨 주었다.

입술. 뉴트의. 진짜, 정말, 엄청나게, 소름끼칠 만큼, 너무, 차가운 뉴트의 입술.

숨이 더웠다.



*



뉴트, 네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했으면 어땠을까, 네가 원하는대로 아무런 미련 없이 너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 나와 달리 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네 안위를 상관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었다면 너는 행복했을까. 너를 행복하게 죽게 해 줄 수 있었을까. 문제는 내가 뉴트를 사랑한다는 데에 있었다.






2O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